전후 일본의 불안과 자기혐오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다자이 오사무의 걸작 『인간 실격』. 오바 요조의 3개 수기를 통해 인간 본성의 균열을 들여다본다.
-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출판
- 더스토리
- 출판일
- 2021.09.10
인간 실격 ― ‘살아남은 자’가 쓰는 유서
1948년, 일본은 전쟁에서 졌고, 청년들은 무너진 국가 아래에서 방향을 잃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시기에 『인간 실격』을 썼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던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누가 그에게 물었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까지 약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을 것이다. 그는 말 대신 요조를 창조했고, 그를 통해 답을 대신했다.
인간을 연기하다가, 결국 실격당한 사람
주인공 요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는 그걸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광대를 선택한다. 일부러 바보처럼 행동한다. 남들이 웃으면, 그걸로 위기가 넘어간다. 누가 나를 의심하거나, 진심을 들여다보는 걸 막기 위한 방식이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은 종종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광대 연기는 오래 못 간다. 결국 그는 무너진다. 인간 관계도, 사회 생활도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당한 것이다.”
자기 파괴는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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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식 구조’라는 거리 두기, 그러나 결국 자전소설
이 소설은 액자식이다. 화자인 ‘나’가 오바 요조라는 남자의 수기를 읽는다. 세 편으로 구성된 수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요조라는 인간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게 된다.
이 구조는 다자이가 일부러 만든 거리감이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너무 가까워서, 직접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명백한 자전소설이다. 요조는 다자이 자신이다. 알코올, 약물, 여성 편력, 사회 부적응, 그리고 마지막 자살까지.
다자이는 ‘나’를 앞세워 ‘요조’를 말하게 했지만, 독자는 금방 알아차린다. 이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고백이다.

요조는 왜 ‘광대’가 되었는가
요조는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단순히 연약한 인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너무 민감하게 타인의 감정을 읽는다. 문제는, 그 감정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감정 수용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타인의 감정을 너무 많이 흡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웃긴 사람이 되기로 한다. 사람들은 그를 편하게 대하고, 그는 그 틈에서 자기 존재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타인의 인정에 기대 만든 자아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그는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린다. 그렇게, ‘사람 흉내’를 내던 존재는, 인간 실격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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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로’가 아니다
『인간 실격』을 위로의 소설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후의 방황하는 청년들을 위로해주었다고. 그러나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 책은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보여줄 뿐이다. 인간은 이 정도로 약하고, 쉽게 망가진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는 해답도, 교훈도 없다.
요조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누구도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독자 역시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절망적이다.
우리는 그를 보며 슬퍼하지만, 그 슬픔은 감정을 건드려 위로하는 종류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도 언젠가는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시대적 배경, 그러나 개인의 이야기
1948년이라는 시점은 중요하다. 일본은 패망했고, 국민 전체가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혼란스러웠다. 부모 세대가 믿었던 가치가 무너졌고, 새로운 방향은 제시되지 않았다.
요조는 그 혼란의 정중앙에 있던 인물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끝내 사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 점에서 『인간 실격』은 집단의 자화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건 철저히 개인의 이야기다. 이 소설이 오래 남는 이유는, 특정 시대를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연약한가?’ 그 질문은 1948년 일본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광대, 조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요조는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다. 그가 택한 방식은 광대였지만, 본질은 같다. SNS에서 밝고 유쾌한 모습을 보이며, 현실에서는 불안과 공허에 시달리는 현대인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요조가 될 가능성을 안고 산다.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살다가, 언젠가는 그것에 짓눌려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사람. 『인간 실격』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경고나 조언 없이, 담담하게.

그래서, 이 책은 읽을 만한가
그렇다. 단, 기분 좋은 독서를 기대하진 않는 것이 좋다. 이 소설은 독자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끌어내린다. 끝까지 읽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 침잠 속에서 인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라는 존재는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인간 실격』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묻고 싶은 이라면, 피하지 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슬픔도 고통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직시하는 경험이 필요할 때, 이 책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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