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심연의 응시, 불가능한 신에게 바치는 헌사: 시몬 베유-신을 기다리며

우리 시대의 지적 풍경 속에서, 때로는 섬광처럼 나타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예외적인 정신들이 존재한다. 시몬 베유, 그녀는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그녀의 짧지만 격렬했던 삶과 사유의 편린들을 담은 "신을 기다리며(Attente de Dieu)"는 단순한 종교적 에세이집 그 이상이다.

 
신을 기다리며
시몬 베유의 대표작 『신을 기다리며』는 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그녀가 소명이라 믿었던 바를 완수하고자 쉴 새 없이 행동하는 가운데 쓴 편지와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베유의 영적 지도자이자 친구 조제프 마리 페랭 신부에게 부친 이 글들은 허물없는 일상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그녀의 전체 저작 중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깊은 열정이 담겨 있다. 죽음을 한 해 앞두고 썼다는 점에서 이 글들은 그녀의 마지막 유언처럼 읽히기도 한다. 베유는 작가가
저자
시몬 베유
출판
복있는사람
출판일
2025.01.23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고, 형언할 수 없는 심연을 응시하며,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붙들고 씨름했던 한 영혼의 고백록이자, 우리 시대의 지적 나태에 던지는 날카로운 도전임에는 틀림없다.

심연의 응시, 불가능한 신에게 바치는 헌사

기다림과 관심: 초월을 향한 숭고한 갈망과 잠재적 한계

이 책의 제목, "신을 기다리며", 이 간결한 문장 속에는 베유 사유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능동적인 탐색이나 맹목적인 믿음과는 거리가 먼, 고통스러운 인내와 예민한 경계의 상태를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줄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비처럼, 그녀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모든 감각을 열고, 자아의 욕망을 잠재운 채, 순수한 '관심'이라는 예리한 칼날로 현실을 해부한다.
여기서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능동적인 '무위(無爲)'의 상태, 즉 자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진리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허용하는 정신적 자세를 요구한다.

기다림과 관심 초월을 향한 숭고한 갈망과 잠재적 한계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기다림'의 태도는 때로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햄릿이 깊은 사유 속에서 행동의 시기를 놓쳤던 것처럼, 베유의 '무위'는 자칫 현실과의 괴리를 낳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책을 구성하는 편지들은 베유의 이러한 내면적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페랭 신부에게 보내는 서신들은 그녀가 세례라는 종교적 의례 앞에서 겪는 깊은 갈등과 망설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녀는 기존의 종교적 권위나 교리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지적 정직성과 영적 통찰력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녀에게 세례는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동의를 요구하는 행위였기에, 섣불리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세례를 향한 망설임

이러한 망설임은 그녀가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치열한 지적 노력의 반영이자, 진리에 대한 타협 없는 그녀의 자세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증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완강한 태도는 때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고립된 영적 탐구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기존 종교 공동체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스스로 고독한 성을 쌓았던 셰익스피어의 일부 비극 주인공들처럼, 베유 역시 자신의 지적 고뇌 속에서 타인과의 완전한 공감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느님 사랑을 위한 학업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성찰"과 같은 발표문에서 베유는 일상적인 학문적 활동조차도 영적인 수련의 도구로 승화시키는 독창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관심'은 단순한 지적 집중을 넘어선, 영혼의 가장 순수한 에너지이며, 진리를 향한 열망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의 근원이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조차도, 진리에 대한 순수한 갈망을 가지고 수행할 때, 영혼의 '관심' 능력을 단련시키는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속적인 활동과 영적인 추구를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며,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서 초월적인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던 그녀의 철학적 열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 개념은 때로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현실 세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베유의 '관심'은 현실의 구체적인 맥락보다는 순수한 지적 영역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베유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도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감상적인 감정이나 이기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사랑은 자아를 비우고 타자의 존재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탈창조(Décréation)'적인 행위이다.
"네 고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속에 담긴 텅 빈 응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오직 타자의 고통에 대한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야말로 베유가 갈망했던 가장 고귀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인간 연대의 가장 깊은 차원을 탐구하는 사유의 지점이다.

 

 

신의 자기 제한과 악의 문제: 형이상학적 통찰과 풀리지 않는 질문들

악의 존재라는 오랜 철학적 난제에 대해서도 베유는 독특한 해석을 제시한다. 그녀에게 악은 신의 전능함이나 선함과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자기 제한과 자기 포기의 결과로 이해된다.

형이상학적 통찰과 풀리지 않는 질문들

신은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피조물에게 자유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부여했고, 바로 그 자유로운 의지의 행사 과정에서 악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악을 단순히 신의 부재나 인간의 타락으로 설명하는 전통적인 신학적 해석과는 차별되며, 신의 사랑과 전능함이라는 두 속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심오하게 통찰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신의 자기 제한(절제)이라는 개념은 때로는 신의 무능력이나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으며, 세상의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성경 속 욥의 고난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부조리한 악의 존재 앞에서 신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베유의 해석은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베유의 기도에 대한 이해 역시 그녀의 독특한 사유를 반영한다. 그녀에게 기도는 단순히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 향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관심'이다.
특히 그녀가 분석하는 주기도문의 각 구절들은 인간의 욕망을 초월적인 현실로 이끌고,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 신의 뜻에 온전히 순응하도록 이끄는 영적인 여정을 보여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첫 구절에서부터, 그녀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강조하며, 인간의 시선이 끊임없이 그를 향해야 함을 역설한다.


결국 "신을 기다리며"는 한 예외적인 영혼이 불가능한 신을 향해 던진 간절한 질문과 고뇌의 기록이다.
시몬 베유는 기존의 종교적 틀이나 철학적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온전한 지적 능력과 영적 직관을 동원하여 인간 존재의 심오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했다.
그녀의 사유는 때로는 역설적이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 시대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리는 진실의 울림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치열한 지적 탐구와 고통스러운 기다림 속에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던 한 영혼의 숭고한 여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 자신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도록 강력하게 촉구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지적 풍경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영원한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 있지만, 동시에 그녀의 사유가 지닌 독특성과 그로 인한 한계 또한 숙고해야 할 지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몬 베유에게 ‘관심’이란?: 영혼의 예리한 칼날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 당신은 발견해 보셨나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관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단순한 주의 집중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근

write-keyboar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