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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보게 하는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

%@#$@ 2021. 12. 19.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희곡으로 1953년에 상연되었다. 두 사람이 황량한 벌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행동을 연신 반복하는데... 그들이 하는 의미 없는 행동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왜 깨쳐야 하는지 대충 얼버무려 보겠습니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 글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책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관점

이름 모를 꽃잎이 하늘에서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걸 보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감성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꽃이 졌나 보군. 우리네 인생도 언젠가 이렇게 지겠지. 하지만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잎이 되고 싶어.'

 

그러자 다른 이는 심드렁히 대꾸한다.

'뭐가 이렇게 떨어져. 후... 정신없어. 길거리 지저분한 것 봐라. 어휴.'

 

당신은 어디에 속하나? 아마도 둘다에 속하지 않을까?

 

기분이 감성적일 땐 전자일 것이고 좀 짜증이 날 경우에는 후자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각각의 머리에 드는 생각이 다르듯이.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단지 다르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또한 안다. 이성은 아주 자주 무력해진다는 사실을.

 

주변에 자기 생각만 주구장창 무례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런 이가 없다면 자신일 수도 있으니 자기 객관화를 한 번 해보시길.

 

곁에 있기만 해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업무에 얽힌 동료나 같은 반 친구, 아니면 가족이 아니라면 굳이 헝클어진 고집쟁이와 감정 섞인 말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는 게,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게 꼴불견스러운 행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지도 안다. 그리고 솔직히 공부 잘하는 방법과 부자 되는 법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굳이 모른 체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자신의 게으름을 굳이 탓할 필요도 없다. 

 

여하튼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우등생이고 부자인 잘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를 탓하지 말아라. 탓하며 네거티브 할 시간에 잘 나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쉽게 모방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솔직하지 못한 이상한 세상에 굳이 솔직해질 필요는 없다.

 

고도를 기다리며 소개

오늘 소개할 이야기도 이상한 이야기다. 사뮈엘 베케트란 사람이 오래전 ...1953년에 초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이다. 명작이라 하는데 솔직히 읽는 사람에 따라 이게 뭐야?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맞다. 이게 뭐야 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좋은 부조리 희곡이고, 알아먹지 못하는 헛소리를 하는 이야기이다.

 

베케트란 사람은 이 희곡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 겠지만 '부조리극'이란 것을 베케트가 만들었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희곡의 ABC가 없다.

 

발단 전개 사건.. 이런 게 없이 극 내내 몇 사람이 헛소리 하는 희곡이다. 때문에 처음 나왔을 때 들을 수 있는 혹평은 모두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 특히 특정분야에서 나름 머리를 흔들고 있는 자들은 낯선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전문가처럼 안보일 수 있으니, 저것은 엉망이다, 말도 안 되는 쓰레기다 등등 뭐 이런 말들로 자신을 방어한다. 베케트의 글은 이런 되바라진 변명을 모두 글 속에 노골적으로 그려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걸까?

 

내가 이렇게 길게 잡소리를 하는 이유는 고도를 기다리며란 희곡은 별 사건, 사고가 없는, 말 그대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이상한 희곡이다. 그래서 이렇게 잡소리를 많이 하는 거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

줄거리는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란 두 사람이 '고도'란 사람을 시골길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이게 전부다. 둘은 시종일관 헛소리를 한다. 대화를 한다고 하지만 벽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둘의 이런 대화가 소통의 부제를 보여준다고 하는 데 이건 글을 읽는 그 사람의 반응일 뿐일 수도 있다. 이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데 '굳이' 그들의 해석을 쫒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다른 인물도 등장하는데 포조와 럭키, 소년이 나온다. 이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반응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악덕업주와 노예 그리고 말 전해 주는 소년일 뿐이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머리 복잡한 사람들은 안정된 상태에서 보길 바란다. 가뜩이나 복잡한데 글을 읽다가 짜증이 폭발할 수도 있으니 자제하시길.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전작이니 읽어보시길. 서너 번 읽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푸념이 늘어만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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