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것처럼, 바인랜드(Vineland)는 1960년대의 급진적 이상이 1980년대의 보수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는 조이드 휠러(Zoyd Wheeler), 프레리 휠러(Prairie Wheeler), 그리고 프레네시 게이츠(Frenesi Gates)가 있다.
이 세 인물의 삶과 선택은 핀천이 그리고자 한 미국 현대사의 균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이들의 관계와 여정을 통해,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시대의 흐름과 얽혀드는지 들여다보자.
조이드 휠러는 과거의 급진적 반항 정신을 품었던 인물이지만, 소설이 시작될 때 그는 더 이상 이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1980년대 빈랜드(Vineland)에서 그는 딸 프레리와 함께 은둔하듯 살아간다.
조이드는 매년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텔레비전용 광경을 연출하며 체제의 허술한 틈을 이용하지만, 이는 한때 체제에 저항했던 삶과는 거리가 먼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그는 과거를 외면하며 살아가지만, 과거는 조이드와 그의 딸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어느 해, 연례 행사의 장소가 바뀌고 지역 전체에 대규모 마약 단속이 예고되면서 조이드는 불안을 느낀다. 과거 급진적 활동 경력이 있는 그는, FBI 요원 브록 본드(Brock Vond)로부터 딸 프레리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조이드는 프레네시와 과거를 공유한 인물로, 그녀의 급진적 활동과 정부 탄압의 잔혹함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딸 프레리에게 어머니의 과거를 모두 말해줄 수 없으며, 기억과 후회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 속 조이드는 한때는 체제에 저항했지만, 이제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시대의 아이러니를 체현한다. 그는 딸을 지키려 애쓰지만,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프레리 휠러는 어머니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프레네시에 대한 수수께끼를 품고 살아왔고, 정부 감시망이 좁혀오는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행방과 과거를 직접 추적하기 시작한다.
프레리는 아버지의 옛 동료인 DL 채스테인(DL Chastain)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급진적 영화 제작 집단(militant film organization)에 대해 알게 된다. 그녀는 프레네시가 남긴 필름과 공동체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어머니가 남긴 흔적을 하나하나 쫓아간다.
10대 소녀 프레리는 강인하고 예리하다. 그녀의 여정은 단순한 가족사 복원이 아니다. 1960년대 반문화 운동과 1980년대의 국가 통제 사이, 잃어버린 가치와 무너진 이상을 복원하려는 사투다.
핀천은 프레리의 시선을 통해 개인의 삶이 어떻게 시대의 흐름에 얽혀드는지를 교차 편집처럼 보여준다.
프레네시 게이츠는 프레리의 어머니이자 조이드의 옛 연인이며, 과거 급진적 학생운동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다. 그녀는 경찰 폭력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급진 운동의 선두에 섰지만, 결국 FBI 요원 브록 본드와의 관계에 휘말려 동료들을 배신한다.
프레네시의 배신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그녀는 프레리의 기억 속에서 신화적이고 모순된 존재로 남는다.
프레네시의 변절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다. 그녀는 이상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권력의 유혹과 개인적 욕망에 굴복했다. 핀천은 그녀를 통해 1960년대의 순수한 열정이 현실 권력에 부딪혀 어떻게 타락하고 변질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프레네시가 자신의 신념과 가족을 버리고 브록 본드를 선택했는가는,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다. 독자들은 프레리와 함께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며, 한 개인의 몰락을 넘어 시대 전체의 몰락을 목격하게 된다.
Vineland는 조이드와 프레리의 불안정한 현재, 그리고 프레리가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과 국가, 가족과 권력의 복잡한 얽힘을 정밀하게 파헤친다.
핀천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리면서,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이 1980년대 보수주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소멸했는지를 증언한다.
프레리의 여정은 단순한 혈연 찾기를 넘어, 한 시대가 남긴 상처와 잃어버린 가능성을 다시 묻는 긴 여행이다.
토머스 핀천의 《Vineland》: 반문화 쇠퇴와 레이건 시대 억압의 서사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Vineland )는 시간 여행 같은 소설이다.1984년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1960년대 미국을 휩쓴 자유와 반항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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